[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연금술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크레용은 흔했는데 색분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 선생님께서 남기신 몽당 색연필을 애지중지 보관했다가 방과 후 빈 교실에 몰래 들어가서 칠판에 알록달록 낙서하곤 했다. 한번은 친구가 크레용을 땅에 묻고 매일 소변을 주면 일주일 후에 색분필이 된다고 해서 열심히 따라 했지만 내 최초의 연금술은 소득 없이 끝났다. 하지만 연금술은 과학과 마술의 세상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인류의 과학 발전에 큰 몫을 했다. 연금술이라고 하니까 아주 엉터리 마술 수준인 것으로 선입견을 품는데 놀라지 마시라, 우리가 잘 아는 사람 중 평생 연금술에 빠져 살던 사람이 있다. 바로 영국의 조폐국장을 역임하고 만유인력을 규명한 아이작 뉴턴이다. 뉴턴은 물리학이나 수학보다도 연금술에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데 인생의 아무런 낙도 취미도 없었던 그는 매일 연구실에서 오로지 연금술에 매달렸다. 그는 돈을 더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기존 원소를 인위적으로 다른 원소로 바꿔보려고 애썼다. 연금술은 근대 화학이 자리 잡기 전까지 과학과 철학을 기반으로 일종의 마술과 같은 분야였다. 나중에 돌턴의 원자설이 자리를 잡으면서 한 원소를 다른 원소로 바꾼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납 같은 흔한 금속을 금으로 바꿔보려고 노력했는데 현대 과학 기술로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입자가속기에서 납이 금으로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구려 금속을 고가의 금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설비와 에너지가 필요하여 결국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커져서 경제성이 전혀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발품 팔아 금 광산을 찾아서 채굴하는 편이 오히려 싸게 먹힌다. 연금술이란 말은 처음에 이집트에서 생겼다가 나중에 아랍권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흔한 금속으로 값나가는 금을 만들려는 시도에서 유래된 말이다. 과학이라기보다 주술과 미신으로 흐른 까닭에 14세기 초에는 로마 교황이 연금술을 금하기도 했다. 나중에 화학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에 영어 단어 화학(chemistry)의 어원은 연금술(alchemy)에서 유래한다. 글 서두에서 필자의 경험을 예로 들었지만 흔하고 가치 없는 금속을 땅속에 오래 묻어두면 나중에 금이 된다는 민간 신앙이 연금술의 시작이었다. 게다가 꼭 값나가는 금을 만든다기보다 쓸모없는 것이 금이 되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도 정화된다는 일종의 인생 수양이란 점에서 철학과도 연결된다. 얼핏 보아서 아주 비과학적인 연금술이지만 연금술사들이 금을 만들기 위해서 고안해 낸 증류 장치 같은 수많은 실험 도구들과 그 부산물로 얻어진 새로운 물질은 나중에 과학의 영역으로 자리 잡은 화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7세기 중엽 독일의 한 연금술사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소변이 색이 같은 황금과 아무래도 무슨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 소변을 가열하고 정제하다가 어떤 물질을 발견했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가 발견한 것은 원자 번호 15번 인(phosphorus)이었다. 사실 물리학과 천문학이 주류 과학으로 자리매김을 하는 동안 약학과 화학 등은 겨우 연금술의 형태로 그 명맥을 이어 내려오고 있었다. 동양에서는 돈이 되는 금을 만들려 하기보다 오히려 불로장생약에 더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연금 과학과 철학 과학 발전 현대 과학